말씀으로 사는 삶(Daily devotion) - 2023.6.8.(목)
2023.06.08말씀으로 사는 삶(Daily devotion) - 2023.6.8.(목)
<생각하기>
1) 여리고에 있던 허다한 무리는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무리는 예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는 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무리의 한계였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향해 기도하거나, 예수님을 경배하거나, 예수님을 구원의 길과 생명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2) 그러나 바디매오는 나사렛 예수가 아닌, 다윗의 자손 예수라 호칭했습니다. 바디매오는 맹인이고 거지이지만,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3) 성한 두 눈을 가진 무리는 예수님의 기적을 자기 눈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듣는 것보다 더 생생한 현장감과 체험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함께 걷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나사렛 예수”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이 메시야이자 구원자라는 절대적 믿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예수님의 어떤 기적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들었을 뿐입니다. 들었을 뿐임에도 그 들음을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그것이 기적을 낳게 한 것입니다.
<묵상하기> 로마서 10:9-10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기도하기>
주님, 주의 말씀이 생명임을 믿습니다.
그 말씀이 내 귀에 들리어지게 하시며,
주의 말씀을 읽을 때, 말씀을 깨달아지게 하시며,
주의 말씀을 살아 낼 수 있는 용기를 더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주님을 자랑하는 당신의 자녀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순종하기>
※ 사실 무리는 예수님이 없어도, 그들이 살아가는 데 별 지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맹인 바디매오는 이들과는 다릅니다. 절박합니다. 예수님이 유일한 방법이자 길입니다. 바디매오는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를 원했던 것입니다. 절박함의 차이가 예수님을 향한 호칭의 차이를 다르게 했습니다.
1) 나에게 있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정의해 봅시다.
나에게 예수님이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 ’눈으로 보았다는 사실이 믿음의 눈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해서 믿게 되었는지, 그 믿음은 진실한 지를 진솔하게 점검해 봅시다. 나는 예수님이란 단어에서 절박함이 있습니까?